2013년 11월 4일 월요일

[QTZine] 사무엘하 14:25-33

25절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의 용모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아름다움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 시대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겉모습을 중시하는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외모로 평가하는 시대, 내면보다는 외면을 더 가꾸기를 바라고 열심인 우리들이다.
사무엘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16:7)"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하고 여호와의 말씀에는 안중에 없다.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는데도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모습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하셨지만,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 의롭게 여김을 받은 우리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것이다.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33절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요압에게 강압적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하라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요압은 다윗왕에게 나아가 말하고 다윗왕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부르고 재회하는 모습이 이 구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내가 봐 왔던 격정적인 만남들, 눈물과 환희, 기쁨이 없는 단지 형식상에 불과한 모습처럼 보인다. 다윗왕도 아버지로써 압살롬에게 처벌할 때에는 단호하게 용서할 때는 사랑으로 온유하여야 했지만 이것이 부족했던 모습이었던 것도 있으며 압살롬이 자신의 죄를 뉘우친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이 둘의 만남은 형식적인 만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왕과 신하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물론 압살롬의 회개가 없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시편에서 노래하던 다윗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찬양하고 찬미하며 하나님 앞에 간구했던 그 다윗의 모습은 어디갔을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에는 인내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용서함으로서 사랑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용서는 사랑으로 발현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에 빠져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시지 않으시며 용서하신다. 우리가 그 분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매일매일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나의 삶도 그러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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