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종된 시인은 그 분 앞에 엎드려 종이 주인을 바라보는 눈 같이 도우심과 긍휼을 나타내주시기를 원한다. 세상 속에서 죄악을 저지르고 다녀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편안하게 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시인을 조롱하고 비웃는 상황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시인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 간절함이 본 말씀가운데 드러나있다.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 속에서 의지할대라곤 오직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뿐이 없기에 간절히 호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 이번 주 내가 결단한 것,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보호하시며 지키실 것이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 비록 가진 것 없고 약하여도 나의 주께서 친히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에 채워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란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나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이 찬양을 통해 한 주의 시작을 힘있게 출발! 임마누엘!
명곤이의 블로그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2013년 12월 5일 목요일
[QTZine] 사무엘하 24:18-25
23절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아라우나는 가지고 있는 재산 전부를 드리며 이것으로 왕이 기뻐하시기를 바라고 있다. 왕께 대한 헌신의 모습, 나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를 원하는 마음. 아라우나의 전적인 믿음과 헌신을 통해 내가 누구를 기뻐하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해본다.
24절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다윗은 은 오십세겔(노동자의 200일 품삯)을 지불하고 아라우나의 번제물들을 사들여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종들에게서 취한 것들을 자신의 것마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댓가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따뜻한 마음. 고린도 교회의 풍성한 연보를 생각나게 한다.(고린도 후서 9장 참조)
25절 "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번제는 죄 사함과 헌신의 의미하며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평화와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이다. 다윗은 이 두 제사 모두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자신이 이전에 행동했던 죄들에 대해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제사들을 흠향하시고 다윗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 내리셨던 재앙을 거두어 가셨다. 이렇게 다윗왕 한 사람의 진실한 기도는 한 나라를 고침받게 하며 평화가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사무엘서는 이렇게 한나의 기도로 시작하여 다윗의 기도로 마무리를 짓는다. 한 사람의 기도에도 이렇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여러사람이 중보하는 그 자리는 얼마나 큰 은혜의 자리이며 능력이 임하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사무엘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하염없이 베푸시는 큰 사랑과 은혜를 볼 수가 있었다.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구원되심을 기억하고 의지 할 때에 높임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될 것이다.
24절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다윗은 은 오십세겔(노동자의 200일 품삯)을 지불하고 아라우나의 번제물들을 사들여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종들에게서 취한 것들을 자신의 것마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댓가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따뜻한 마음. 고린도 교회의 풍성한 연보를 생각나게 한다.(고린도 후서 9장 참조)
25절 "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번제는 죄 사함과 헌신의 의미하며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평화와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이다. 다윗은 이 두 제사 모두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자신이 이전에 행동했던 죄들에 대해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제사들을 흠향하시고 다윗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 내리셨던 재앙을 거두어 가셨다. 이렇게 다윗왕 한 사람의 진실한 기도는 한 나라를 고침받게 하며 평화가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사무엘서는 이렇게 한나의 기도로 시작하여 다윗의 기도로 마무리를 짓는다. 한 사람의 기도에도 이렇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여러사람이 중보하는 그 자리는 얼마나 큰 은혜의 자리이며 능력이 임하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사무엘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하염없이 베푸시는 큰 사랑과 은혜를 볼 수가 있었다.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구원되심을 기억하고 의지 할 때에 높임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될 것이다.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QTZine] 사무엘하 24:1-17
1절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역대상 21:1)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보이기 위하여 사탄이 다윗의 마음을 충동하게끔 허용하셨다.
이따금씩 우리의 마음에도 죄악을 저지르게끔 움직이려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이시기 위해 사단까지 이용하셔서 자기에게로 우리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17절 자기 잘못으로 인한 죄의 결과가 자신의 백성들에게로 전가되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더 이상 그들에게 행하지 말고 자신의 집에 저주가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즈음 "나만 아니면 되" 라는 풍조가 만연하여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사회 풍조가 넘치게 되었다.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여기는 애통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우리의 중보기도와 애통하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키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이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으로 우리는 이러한 복을 받는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진노의 손을 거두시고 그 일을 행하려는 천사를 막으셨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 또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시며 전지전능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나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이라는 가장 큰 은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 나를 더욱 겸손함으로 교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을 무한 의지해야함을 깨닫게 된다. 오늘 하루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그 분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역대상 21:1)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보이기 위하여 사탄이 다윗의 마음을 충동하게끔 허용하셨다.
이따금씩 우리의 마음에도 죄악을 저지르게끔 움직이려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이시기 위해 사단까지 이용하셔서 자기에게로 우리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17절 자기 잘못으로 인한 죄의 결과가 자신의 백성들에게로 전가되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더 이상 그들에게 행하지 말고 자신의 집에 저주가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즈음 "나만 아니면 되" 라는 풍조가 만연하여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사회 풍조가 넘치게 되었다.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여기는 애통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우리의 중보기도와 애통하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키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이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으로 우리는 이러한 복을 받는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진노의 손을 거두시고 그 일을 행하려는 천사를 막으셨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 또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시며 전지전능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나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이라는 가장 큰 은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 나를 더욱 겸손함으로 교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을 무한 의지해야함을 깨닫게 된다. 오늘 하루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그 분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QTZine] 사무엘하 23:18-39
이번 장은 다윗을 따르는 용사들의 대한 말씀이다.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구덩이에 내려가 사자를 죽이는 등 자신의 목숨을 다해 다윗을 지키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용사들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군사인 우리들 또한 다윗의 용사들처럼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3)와 의의 무기(고후 7:7)를 들고 나아가야 한다. 나도 이 세상 가운데 살며 그 분의 명령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이 용사들의 댓가는 무엇일까? 명예, 돈 이러한 것들 때문에 다윗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걸었을까? 다윗왕의 영광, 그의 나라의 안위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닐까? 그저 자신의 욕심대로 행동했다면 성경안에 그들의 이름이 적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압 또한 다윗왕의 위대한 용사였지만 다윗의 뜻을 거슬러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자신의 생각대로, 욕심대로 행했던 인물이었다. 그러하여 요압은 다윗의 용사 목록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능력과 재능이 많아도 이것을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욕심대로 사용한다면 자신의 주인에게는 인정받지 못한다. 단지 자기 과시와 탐욕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겸손함과 순종의 모습을 회복하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왕의 용사들 중에는 이방인들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출신이 장벽이 되는 것이 아닌 능력과 성실함으로 함께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은사와 재능과 지혜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며 자신을 내어드리는 수고를 감내할 때에 그러한 공동체는 하나가 되며 반석위에 세워진 집처럼 든든히 서나갈 것이다.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구덩이에 내려가 사자를 죽이는 등 자신의 목숨을 다해 다윗을 지키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용사들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군사인 우리들 또한 다윗의 용사들처럼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3)와 의의 무기(고후 7:7)를 들고 나아가야 한다. 나도 이 세상 가운데 살며 그 분의 명령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이 용사들의 댓가는 무엇일까? 명예, 돈 이러한 것들 때문에 다윗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걸었을까? 다윗왕의 영광, 그의 나라의 안위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닐까? 그저 자신의 욕심대로 행동했다면 성경안에 그들의 이름이 적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압 또한 다윗왕의 위대한 용사였지만 다윗의 뜻을 거슬러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자신의 생각대로, 욕심대로 행했던 인물이었다. 그러하여 요압은 다윗의 용사 목록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능력과 재능이 많아도 이것을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욕심대로 사용한다면 자신의 주인에게는 인정받지 못한다. 단지 자기 과시와 탐욕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겸손함과 순종의 모습을 회복하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왕의 용사들 중에는 이방인들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출신이 장벽이 되는 것이 아닌 능력과 성실함으로 함께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은사와 재능과 지혜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며 자신을 내어드리는 수고를 감내할 때에 그러한 공동체는 하나가 되며 반석위에 세워진 집처럼 든든히 서나갈 것이다.
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QTZine] 사무엘하 23:1-8
2절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다윗은 자신의 말이 본인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다라고 말한다. 성령의 완전한 지배 아래에 있는 상태를 성령충만함이라 부르며, 그러한 성령 충만한 다윗이 말하는 모든 것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신적 권위를 가지는 말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성실히 이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불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언제나 굳건히 지키시며 언제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실 수 있게 하시는 분임을 느끼게 된다.
6-7절 "사악한 자는 다 내 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불살리리로다 하니라" 가시는 범죄이후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의 상징으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되는 세력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무가치하기 때문에 버림받고 철저히 파멸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불 심판의 의미는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 건설하실 나라에 불의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될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필연성을 깨우치고 있다. 우리의 모습을 더욱 거룩하게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하는 이유는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해야함은 미래의 심판의 대상 또한 내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성령충만과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더욱 거룩한 자로 거듭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하며..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로다 (시편 18:2)
2013년 11월 5일 화요일
[QTZine] 사무엘하 15:1-12
7절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왕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압살롬은 왕과 대면한 후 물러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과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고 반란을 준비한다. 백성들과 입을 맞추며 민원을 해결해 주면서 민심을 사고 군대의 호위병들을 자신과 함께 동행시켜 위엄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다시 왕께로 나아가 자신을 헤브론으로 나아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다. 그의 명분은 헤브론에서 서원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이었다. 이에 왕은 압살롬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헤브론으로 가도록 허락한다. 그와 함께 헤브론으로 가는 백성들은 압살롬이 꾸민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압살롬이 무슨 일을 벌일지 아무도 모른채 따라가고 있다.
서원제사를 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압살롬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 관철시키며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 또한 보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 뜻일거야,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꺼야. 이러한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순종과 결단 그리고 묵상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말씀 속에서 나에게 그 분의 뜻을 알아가고 그것에 순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여져서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 예전부터 기도하던 두 명의 친구에게 편지를 건내주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장난으로 돌아올 줄 알았지만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고맙다,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감사하고 마음 속으로 친구들의 마음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다시 한 번 더 복음을 전하려 한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들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서원제사를 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압살롬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 관철시키며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 또한 보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 뜻일거야,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꺼야. 이러한 생각들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순종과 결단 그리고 묵상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말씀 속에서 나에게 그 분의 뜻을 알아가고 그것에 순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여져서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 예전부터 기도하던 두 명의 친구에게 편지를 건내주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장난으로 돌아올 줄 알았지만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고맙다,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감사하고 마음 속으로 친구들의 마음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다시 한 번 더 복음을 전하려 한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들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QTZine] 사무엘하 14:25-33
25절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의 용모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아름다움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 시대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겉모습을 중시하는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외모로 평가하는 시대, 내면보다는 외면을 더 가꾸기를 바라고 열심인 우리들이다.
사무엘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16:7)"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하고 여호와의 말씀에는 안중에 없다.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는데도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모습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하셨지만,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 의롭게 여김을 받은 우리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것이다.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33절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요압에게 강압적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하라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요압은 다윗왕에게 나아가 말하고 다윗왕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부르고 재회하는 모습이 이 구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내가 봐 왔던 격정적인 만남들, 눈물과 환희, 기쁨이 없는 단지 형식상에 불과한 모습처럼 보인다. 다윗왕도 아버지로써 압살롬에게 처벌할 때에는 단호하게 용서할 때는 사랑으로 온유하여야 했지만 이것이 부족했던 모습이었던 것도 있으며 압살롬이 자신의 죄를 뉘우친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이 둘의 만남은 형식적인 만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왕과 신하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물론 압살롬의 회개가 없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시편에서 노래하던 다윗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찬양하고 찬미하며 하나님 앞에 간구했던 그 다윗의 모습은 어디갔을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에는 인내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용서함으로서 사랑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용서는 사랑으로 발현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에 빠져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시지 않으시며 용서하신다. 우리가 그 분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매일매일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나의 삶도 그러하기를 기도한다.
사무엘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16:7)"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하고 여호와의 말씀에는 안중에 없다.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는데도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모습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하셨지만,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 의롭게 여김을 받은 우리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것이다. 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33절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요압에게 강압적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하라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요압은 다윗왕에게 나아가 말하고 다윗왕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부르고 재회하는 모습이 이 구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내가 봐 왔던 격정적인 만남들, 눈물과 환희, 기쁨이 없는 단지 형식상에 불과한 모습처럼 보인다. 다윗왕도 아버지로써 압살롬에게 처벌할 때에는 단호하게 용서할 때는 사랑으로 온유하여야 했지만 이것이 부족했던 모습이었던 것도 있으며 압살롬이 자신의 죄를 뉘우친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이 둘의 만남은 형식적인 만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왕과 신하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물론 압살롬의 회개가 없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시편에서 노래하던 다윗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찬양하고 찬미하며 하나님 앞에 간구했던 그 다윗의 모습은 어디갔을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에는 인내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용서함으로서 사랑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용서는 사랑으로 발현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에 빠져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시지 않으시며 용서하신다. 우리가 그 분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매일매일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나의 삶도 그러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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